미래대응기금의 재원 규모에는 사업비와 여유자금, 국채 신규발행 축소가 함께 담겨 있어 전체를 지자체의 새 사업예산으로 볼 수 없다. 지역은 확보할 금액보다 해결할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기존 사업과 새로운 수단의 조합을 검토해 선택의 근거를 갖춰야 한다.
162조 원이라는 숫자를 보면 지자체는 먼저 어떤 사업을 넣을 수 있을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제시한 재원의 크기와 우리 지역이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는 다르다. 예산 확보의 출발점을 큰 숫자에 두면 지역의 필요보다 중앙의 사업명이 먼저 보인다. 미래대응기금 대응은 신청할 사업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지역이 해결할 문제와 정책 수단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총액보다 돈의 역할을 구분하라
정부가 9월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은 미래대응기금 재원 활용 규모를 162조3,000억 원으로 제시했다. KDI가 9월 11일 공개한 토론회 자료에서는 이를 사업비 45조4,000억 원, 국채 신규발행 물량 축소 12조5,000억 원, 여유자금 104조4,000억 원으로 나눈다. 지자체의 사업 검토는 이 세 금액의 기능이 같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업비는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대한 투자 계획이다. 여유자금은 당장 지역사업에 배분되는 예산과 구별해야 하며, 국채 신규발행 축소는 지자체가 신청할 수 있는 사업 항목이 아니다. 전체 규모를 지역 공모시장으로 읽거나 이미 발행한 국가채무를 그만큼 갚는다고 설명하면 정책 판단의 기준부터 흐려진다. 기금의 운용 규모와 신규 사업지출은 서로 다른 숫자다.
이 글은 정부 예산안과 공식 설명자료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분석이다. 정부안의 금액을 지역별 확정 지원액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개별 사업의 실행 주체와 배분 방식, 지역에 적용되는 조건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기금이라는 공통 이름 아래 묶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업이 지자체 공모이거나 같은 절차를 거친다고 가정할 수도 없다.
사업 목록을 문제 중심의 묶음으로 바꿔라
지자체가 먼저 할 일은 부서별 희망사업을 취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청년이 떠난다는 진단만으로는 사업을 고를 수 없다. 첫 일자리의 부족인지, 통근의 어려움인지, 주거비 부담인지, 교육과 채용의 연결이 약한지 구분해야 한다. 같은 인구 변화라도 원인이 다르면 필요한 수단과 협력기관이 달라진다. 문제의 이름을 넓게 붙일수록 사업은 늘고 책임은 흐려진다.
가령 청년의 지역 취업을 지원하는 가상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방식과 기업의 채용 수요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은 출발점이 다르다. 기존 교육의 수료자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과 교육 내용이 맞는지부터 살펴볼 수 있다. 교육시설 건립을 처음부터 결론으로 정하지 않고 상담, 교육, 현장 실습, 채용 연결 중 무엇이 부족한지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 사업 성과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기획 순서를 설명하는 예시다.
이렇게 정의한 문제를 중심으로 기존 사업과 검토할 신규 사업을 한 장에 놓아야 한다. 대상자가 겹치는 사업,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시설, 서로 다른 부서가 따로 모으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새 재원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사업 옆에 하나를 더 얹으면 주민에게는 이용 경로만 복잡해질 수 있다. 추가 사업의 필요성은 사업 수가 아니라 기존 체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지점으로 설명해야 한다.
정책 포트폴리오는 선택의 기준이다
여기서 정책 포트폴리오는 많은 사업을 보유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유지하고, 연결하고, 바꾸고, 새로 시작할지 함께 판단하는 구조다. 각 사업의 규모가 작더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역할이 연결되면 효과적인 조합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개별 평가에서 좋아 보이는 사업도 한 지역에 동시에 배치했을 때 대상과 기능이 중복될 수 있다.
사업을 비교할 때는 적어도 네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주민이 겪는 문제가 얼마나 분명한가, 기존 사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실행 주체가 실제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결과를 확인할 근거를 모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중앙정부의 확정 심사기준이 아니라 지자체가 내부적으로 적용할 판단 기준이다. 공고의 평가항목이 나오기 전에도 지역의 기획 품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지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의 중요도가 낮은 사업을 앞세우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반대로 중요한 문제라고 해서 준비되지 않은 대규모 사업을 곧바로 추진할 이유도 없다. 중요하지만 정보가 부족한 과제는 수요 확인과 협력기관 논의부터, 이미 충분한 근거가 쌓인 과제는 구체적인 실행 설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사업 간 순위뿐 아니라 같은 사업의 준비 단계도 구분해야 한다.
기금의 분야별 구분은 지역 전략을 정리하는 참고 틀이다. 그 틀에 맞추느라 지역 문제를 억지로 쪼개거나 모든 분야에 사업을 하나씩 채울 필요는 없다. 한 지역의 강점과 과제가 특정 분야에 집중될 수 있고, 한 문제의 해결에 여러 분야의 수단이 함께 필요할 수도 있다. 중앙의 분류를 이해하되 지역의 전략을 그 분류표와 동일시하지 않는 판단이 중요하다.
지금 만들 것은 확보 목표가 아니라 선택 근거다
실무적으로는 사업명보다 먼저 문제, 대상, 기존 대응, 부족한 기능, 검토 대안, 필요한 확인사항을 적은 기획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공식 자료에서 확인된 내용과 지역이 세운 가설도 다른 칸에 둔다. 가설을 사실처럼 쓰지 않아야 추가 조사와 협의가 필요한 지점이 드러난다. 자료가 부족한 칸을 그럴듯한 문장으로 채우는 것보다 비워 두고 확인 책임자를 정하는 편이 낫다.
단체장 보고에서도 총사업비의 합계만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지역의 어떤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는지, 다른 대안보다 왜 이 조합이 적절한지, 아직 판단을 유보한 항목은 무엇인지가 먼저 보여야 한다. 사업을 제안한 부서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부서가 같은 대상과 기능을 기준으로 대안을 비교하면, 국비 대응은 개별 부서의 유치 경쟁에서 지역 전체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다.
162조 원은 지역이 확보할 몫을 미리 계산하는 숫자가 아니라 재정의 기능을 구별해서 읽어야 할 출발점이다. 지자체 전략의 수준은 얼마나 큰 신청 목록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가에서 드러난다. 기금의 이름이 바뀌어도 유지할 지역의 문제의식, 서로 연결되는 정책 수단, 선택을 설명할 근거를 먼저 갖춰야 한다. 재원을 따라 지역의 미래를 정하기보다 지역의 미래에 필요한 재원을 찾아가는 순서가 바람직하다.
김용한 | 엠아이넥스트 대표·경영학박사
김용한은 엠아이넥스트 대표이자 경영학박사다. 국비공모·정책기획, 상권·관광 등 기업·공공·로컬 분야의 전략을 연구하고 컨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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